일단 깨달을 때까지는

모든 중생들이 전부 본래 한자리 한몸이고, 전부 하나로 본래 되어있죠. 그것도 이제 하나로 붙이는, 하나로 몰아가는 과정, 그게 바로 분별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본래 한자리에서 벌어졌는데 벌어진 것을 다시, 벌어져서 이렇게 나왔는데 그 끈을 잡고 다시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면은 본래 하나에서 벌어져 있는 그 본래자리로 들어가는 거죠. 그래야만이 내가 이 벌어져 있는 것도 그 자리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아는 거죠. 그래 이게 둘이 아닌 것을 그 때 아는 거죠. 그러니까 일단은 내가 그 법이 그러하다고 하니까 일단은 내가 들어가라 이런 얘기죠. 지금은 구분이 되고 저게 잘못되고 잘되고 그런 거 뭐 분명히 있겠죠. 있으나 내가 지금 시비를 하면은 법을 모르니까 일단 들어가자. 일단 지금은, 지금은 내가 분별할 때가 아니다. 일단 법을 먼저 찾고 그 다음에 정확하게 알고 나서 분별을 하든지 구분을 하든지 어떻게 해라. 이런 얘기예요. 왜냐? 지금 현재로서는 내가 깨닫기 전에는 모르는 거예요. 뭐가 진짜인지를 모르는 거예요. 뭐가 옳은지 뭐가 그른지를 정확하게 모른다는 거죠. 안 그래요? 정확하게 어떠한 것이 맞다고 맞느냐고 만약에 묻는다면은 대답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막 우겨놓고도 만약에 그게 진짜로 맞냐고 하면은 대답할 수 있어요? 아마 없을 겁니다. 막 그렇게 물으면 갑자기 멍해질 거예요. '진짜이게 진짜 맞나?' 자기도 모르거든요. 그냥 세상 보면서 그냥 '그게 맞겠지' 하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도 자기한테 한 번 물어볼 일이예요. 과연 내가 이거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말 맞는가? 그래가지고 정말 맞는가 물었는데 그 대답이 정말 맞다고 하면 맞겠죠. 그런데 한 번 진짜 들어가 보세요. 여러분이 깨닫기 전에는요 그거 맞다고 생각 안 듭니다.

 

그래서 제가 기독교인한테 그런 거 물어봤다고 그랬잖아요. 안양에서 올 때 택시를 탔는데 제가 스님이니까 자기는 기독교도 알고 불교도 안다고, 그래서 저한테 설득을 시키려고 막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 가만히 있었더니 계속 얘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다 듣고 나서 제가 그랬죠. 하나만 물어봤죠. "그런데 그거 진짜 믿어요?"(대중 웃음) "진짜 그렇다고 생각해요?" 내가 그랬죠? 그랬더니 "예? 성경에 나왔잖아요?" 이러더군요. 기독교인들이 똑 같이 하는 대답이죠. 기독교인들한테 물으면 공통적으로 하는 대답이죠. '성경에 나왔잖아요' 이 대답이 말입니다.  "그래요. 성경에 나왔죠. 맞죠. 그런데 성경에 나온 사실을 당신이 진짜로 믿냐고요." 진짜로 믿냐고 내가 그랬어요. 그랬더니 대답을 못하대요. 대답을 못하고 막 다른 말을 하더군요. 그러다가 저는 공항에서 내려야 되니까 내렸는데요, 그러니까 딱 정곡 찔러버리면 대답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깨닫기 전에는 자기가 진짜로 모른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에 찔러 버린 거죠. 그러니까 막 당황해가지고 성경에 나왔는데 왜 그걸 묻냐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온 건 맞다. 근데 그 성경에 나온 사실을 진짜 믿느냐고, 본인이 진짜 그렇게 생각 되냐고 그랬죠. 그랬더니 말 못하더라고요.

 

그러하듯이 자기가 진짜로 자기한테 묻고 들어가면 모르는 건 모르는 거고 아는 건 아는 거거든요. 그 정확하게 나옵니다. 그러는데 자기도 그것을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고 막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진짜 맞다고 생각하는 거나 여러분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 있으면 진짜 그것이 딱 맞느냐고 한 번 물어보세요, 자신한테. 자신한테 물어볼 일이죠. 그러면 맞다고 하면 맞을 것이고 안 맞다고 하면 안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사고(思考)나 어떠한 것들도 그 자리에서 나오는 하나의 가지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로 딱 맞다고 할 수는 없어요. 부분적으로 어떻게 쓰인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딱 맞다고 대답 절대 못합니다. 그것은 오로지 깨달은 사람만이 압니다. 그래서 팔정도가 깨우치고 나서 나온 거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팔정도가 뭔지 모릅니다. 뭐가 뭔지 몰라요.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알아야 이게 맞고 저게 틀리고가 나오죠. 그 자체를 모르는데, 그냥 막연히 살고 있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일단은 여러분들이 '내가 맞다'고 하지 마라. 일단은 내가 정말로 진리를 다 알지 못하면은 맞다고 하지 말고, 일단은 맞다고 하지 말고 그 진리 쪽으로 향해서 쫓아가란 얘기죠. 그거는 제가 항상 말하잖아요. 학교에서 공부할 때 그건 잘 하잖아요. 정답에 맞춰가지고 빨리 푸는 거. 안 그래요? 공부하다가 안되면은 정답에 맞춰가지고 문제 빨리 풀잖아요. 정답에 맞춰가지고 하면 답 빨리 나오죠? 혼자 하면 되게 어려울 때 좀 귀찮으면 정답 갖다놓고 하잖아요? 그러면은 이렇게 맞추면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러하듯이 정답을 갖다 놓고 그 쪽으로 맞춰 들어가면 오히려 좀 쉽다는 얘기예요.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그쪽으로 무조건 막 그 쪽으로 몰아가는 거죠. 그러고 나서, 그때 들어가고 나서 나중에 이해를 하든지 말든지 할 일이죠. 어차피 그 쪽은 내가 모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예요. 이해가 되는 부분이 아니예요, 그 쪽은. 그 쪽은 다른 세계예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예요. 그러니까 그게 이해가 안되는 건데 이해 안되는 것을 어떻게 내가 이해를 해가지고 넘어갑니까? 일단 맞다고 하고, 가정하고 들어가는 거죠.

 

과학에서도 그렇게 하잖아요? 가정해가지고 실험해가지고 되는가 안 되는가 보잖아요? 그래서 가정해서 들어가는 거예요. 가정해서, 아무튼 저사람 믿을만하니까, 아니면 그 책이 믿을만 하니까 그 믿을만한 책을 잡고 가정해서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 봐야 맞는지 틀리는지는 그것도 가봐야 아는 거죠. 실험이 다 끝나봐야 하는 거죠. 래서 일단은 실험이 끝날 때 까지는 아무 말 말아라. 맞다 틀리다 말고 실험을 일단 해라. 둘로 보지 않는 거, 일체 둘로 보지 않으면 그 자리가 나온다고, 분별하지 않는 자리 나온다고 했으니까 일단 분별하지 않는 자리 나올 때 까지는 실험하는 것이 계속 둘로 보지 않는 거죠, 계속. 계속 갈 때 까지 가보는 거예요. 막다른 골목까지 가보는 거죠. 가다가 가다가 보면은, 아니면은 아니다는 생각이 또 듭니다. 다 자기 안에서 가르쳐 줘요. 저도 옛날에 그랬어요. 다른데 있을 때 오래 오래 딴 짓(다른 수행)을 하다 보니까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고 거기서는 그게 맞다고 하니까 무조건 했죠. 그렇다고 하니까 무조건 했는데 하다가 보니까 나중에 아니다는 생각이 들데요. 저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 드니까 스스로 거기서 나오게 된 거죠.

 

그래서 자기 안에서 다 가르쳐 줍니다. 자기가 올바른 길로 가려고 할 때는 그 쪽으로 안내를 해줘요. 그런데 자기가 욕심으로 도를 깨우쳐가지고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할 때는 잘 못 가르쳐줍니다. 잘못 안내를 받게 돼요. 진짜로 자기 자신을 알려고 할 때 자신을 알게 해주는 것이지 욕심으로 할 때는 욕심으로 안내를 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진짜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도를 깨우치려고 하는 마음은 있는데 안 되는 부분이 진실로 도를, 길을 알려고 한 게 아니고 탁 깨우쳐 가지고 좀 좋아지려고 하거나 이름을 얻으려고 하거나 나름대로 다른 욕심을 갖는 거죠. 그럴 땐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게 아니고 진짜 자기를 알려고 할 때 그 자기가 '이게 너야' 하고 가르쳐 주는 거죠. 그래서 본래 모두가, 모두가 본래 부동심이고 한자리고 한 몸이고 본래 그래요. 한손이고. 본래 그러니까 일단 그 쪽으로, 벌어져 있는 가지를 다 몰아가지고 하나로 일단 들어가시면은 부동심이 되고, 부동심이 되면 지혜가 밝아지죠. 그 부동심의 자리를 알게 되는 거죠. 거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밝은 눈이 되는 거죠.

(2007.03.16 경전법회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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