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안되는 진짜 이유

-마음에 탐ㆍ진ㆍ치를 어서 끊기 원입니다.-

 마음에 탐진치를 끊고 싶어 합니까?

 대중: 네

 진실로?

 대중:네

 그런데 제가 생각 할 때는요, 진실로 끊고 싶어 하면은 끊어 질 것이라고 봅니다. 진실로 그러한가? 진짜 오로지 나는 탐진치를 끊어야 되겠다. 나는 정말로 욕심내지 말아야 되겠다. 진실로 그러면 안 끊어질까요? 진실로 여러분들이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보세요. 말로는 “네” 그랬는데 지금 한번 여러분 마음자리로 들어가 보세요.

 

 왜 탐진치가 안 없어지는가? 정말로 내가 그 생각을 하는데 안 없어지는가? 아니면 말로는 그렇게 하면서 속으로는 잡고 있는가? 그걸 봐야 돼요. 안 그래요? 실제로는 다 잡고 있죠. 잡고 있어요. 잡고 있으면서 끊기를 바란다고 헛말을 하는 거죠. 입으로만 그렇게 하는 건 거짓이죠. 그러니 어떻게 끊어집니까? 안 되는 거예요. 여래십대 발원문 바란다고 그러셨죠? 그걸 원한다고, 그런데 원하지 않아요. 진실로 원하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진실로 자신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실제로는 탐진치를 원하죠. 그러니까 자기 발견을 못하는 거예요. 진실로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앉아서 좌선을 하는데, 자기를 발견한다고 하는데 그건 어디로 가고 없고 자꾸 딴생각 나는 거예요. ‘우리아들이 뭐 어떻게 했나?’ ‘우리 남편이 뭐 어떻게 했나?’ 아니면 ‘돈이 지금 돌아 올려나? 잘못되면 안 되는데…’하고 말입니다. 탐진치를 끊기를 원한다면 딴 생각 안하고 오로지 자기를 찾으려고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런데 앉아서 그거 조금 하다가 그건 어디로 가고 없는 겁니다. 그건 진심이 아닌 거예요. 알고 싶은 게 진심이 아니고 지금 다른 것 그게 진심인거예요. 알고 싶은 게 바로 그 다른 것 그걸 알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안 되죠.

 그래서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과연 내가 무얼 원하고, 내가 과연 올바른 씨앗을 뿌리고 내가 뿌린 씨앗이 싹이 올바로 났는지를 잘 보아야 합니다. ‘나는 이 씨앗을 뿌렸는데 왜 저것이 나오나? 왜 자꾸 저 싹이 나오나…?’ 하는데, 싹은요 그 씨앗 뿌린 데로 나옵니다. 절대로 다른 것 안 나와요. 왜 공부는 안 되고 자꾸 딴생각만 나고 왜 그러냐고 하는데, 자기가 원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고 ‘딴 생각’ 그거예요. 원하는 건 그거예요. 잘 생각 해봐야 돼요. 자기가 모르고 거기에 속는 거예요. 그래서 근심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거 해결 돼야 되는데…’하고 말입니다.

 진짜 자기를 알기를 원한다고 하면 자기를 알기를 원하기 때문에 다른 것이 어떻게 되든 안 되든 관심도 없어요. 그건 나는 모르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게 더 중요하니까. 그런데 (마음이) 다른 쪽으로 갔다고 하는 것은 그게 더 중요하다고 하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쪽으로 마음이 먼저 가겠죠.

 그래서 그러한 마음자리부터 헤아려 가지고 생각을 바로 해야 합니다. 씨앗을 바로 뿌려 놓아야 합니다. 바로 뿌려 놓으면 반드시 바른 싹이 나옵니다. 그 싹이 나와요. 씨앗 뿌린 싹이. 그런데 진실이 아닐 때는 땅속으로 안 들어가요. 바깥에서 뱅뱅뱅뱅 돌아요, 땅위에서. 그러다가 썩어 없어져 버리죠. 땅속으로 딱 묻어 놔야 싹이 나올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땅속에다 묻어 놓은 것은 다른 것, 자기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인 거죠. 안 그런 줄 알았죠? 맞아요? 틀려요? 맞죠. 그것 잘 봐야 돼요.

  -삼악도를 여의옵기 원입니다.-

 이것도 진실로 원하지 않죠. 이것도 생각도 없어요. 진실로 내가 삼악도를 여의어야지 하면은 ‘삼악도가 뭘까? 이것 여의려면 어떻게 여의지?’ 하면은 여읠 수 있는 방법 찾잖아요? 찾고 그렇게 합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 찾아가요. 여기 땅속에 금이 들어 있다. ‘이것 어떻게 캐지?’ 삽으로 캐야 된다. ‘그럼 삽 어디 가서 가져오지?’ 찾아옵니다. 금이 있는 줄 알면 찾아 와서 반드시 캐요.

 ‘이 나쁜 것들 없애 버려야한다. 이거 어떻게 없애야 하지? 이 겁나는 것들 이것 두면 안 돼. 이것 없애야 된다. 이것 어떻게 없애지? 뭘로 없애지?’ 가서 없앨 것들 찾습니다. 싹 없애 버립니다. 이 마음은 정확합니다. 안 그래요? 삼악도를 여의려고 마음만 딱 먹으면 ‘이것 어떻게 여의지? 마음과 마음으로 여읜다고 했네? 마음으로 어떻게 여읠까?’ 찾아가지고 싹 없애버립니다. 진실로 원하면 말입니다. 이런 것 하나라도 내가 과연 진실로 원했던가? 그게 중요한 것이죠.

 -마음에 불ㆍ법ㆍ승을 항상 듣기 원입니다.-

 이것도 원하지 않죠. 제가 보니까 전부 원하는 게 아니네요. 예불시간에 노상 이걸 하는데 입으로만 뱅뱅뱅뱅 하지 속으로는 이것 아니죠. ‘마음의 불법승을 항상 듣기 원입니다.’ 처사님들은 자주 못 나오시니까 보살님들은 특히 사시예불시간에 자주 나오셔셔 항상 하는데 진짜로 이것을, 불법승을 듣기를 원하는가? 다 원하지 않았죠? 이것도. 이것도 원하지 않은 것이고

 -마음의 계정혜를 힘껏 닦기 원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안 되는 이유는 다 있어요. 계를 닦든지 정을 닦든지 혜를 원하든지, 아무것 하나라도 진실로만 원한다면 안 될 이유가 없죠. 예를 들어 ‘나는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그러면은 어떻게 하면은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겠죠? 그러면은 또 생각이 납니다. 하나하나 나옵니다. 사람들은 솔로몬 왕이 지혜로웠다 하면서도 자기는 그렇게 되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진실로 자기도 지혜로워지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서 지혜로워 졌는지 찾아가지고 ‘아, 지혜란 이런 것이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지혜로워지는 것이구나! 그럼 나도 그렇게 해보자.’ 해가지고 해냅니다.

 뭐 어렵지도 않아요. 예를 들어 ‘어떻게 정(定)에 들까?’ 그러면은 ‘색(色)이 공(空)이고 공(空)이 색(色)이라고 그랬지.’ 그러면은 이제 스님 말씀이든지 책이든지 거기에 해당되는 게 동원이 돼요. 자기가 알고 있는데서 동원이 돼요. ‘그 공했다고 했지? 그러면은 공 하면은 정에 드나? 아, 그러면 지금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뭐지? 색? 색이 공이 되면 정에 드나? 그러면 그렇게 해볼까?’ 이렇게 추적해 들어가는 거예요, 하나하나. 그러면은 이제 그렇게 해보잖아요. ‘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 그러면 인제 해보죠. 그럼 돼요.

 자기가 정말로 원하면. 뭐든지 그래요. ‘아, 둘이 아니라고 했다. 모두가 둘이 아니지. 큰스님께서 법문에 둘이 아니라고 했다. 둘이 아니다. 아, 그러면 뭐가 둘이 아닐까? 그러면 개미하고 나하고 둘이 아니다. 돼지 하고나하고 둘이 아니다. 독사하고 나하고도 둘이 아니다. 큰스님하고 둘이 아니다. 부처님하고도 둘이 아니다. 아, 이렇게 해야 되네!’ 그럼 계속 합니다. 둘이 아니게. 둘이 아닌걸 알기를 원하면 그렇게 해나가야 하고, 그렇게 하다보니까 하면서 하면서 체험하게 되죠. 그러면서 ‘이래서 둘이 아니라고 했구나.’ 하고 알아내요. 다 알아냅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투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구체적으로 딱 잡고 들어 가면은 다 알아내 집니다. 그런데 그만큼 진실하게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안 찾아 들어가져요. 그러니까 속은 진짜로 원한 게 아니고 껍데기만 듣고 그게 좋은 것이라고 하니까, 계정혜도 좋은 것이라고 하고 삼악도 뛰어넘으면 좋다고 하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거지 속에서 진짜로 ‘아, 그렇게 해야 되겠다.’ 이게 아니라는 것이죠. 안 그래요?

 나 괴롭고 힘들고 그러니까 ‘아, 이렇게 싸우면서 살지 않아야겠다.’ 그래놓고, 우선 괴로울 때 그래요. 그러다가 좀 괜찮아 지고나면 그거 다 어디가고 없어요. 몸이 많이 아프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그러죠? 좀 괜찮아지면 ‘아이고, 살아야지!’ 하면서 왔다 갔다 합니다.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쨌든 정확하게 내가 알아내고 하려고 한다면 마음으로 그 무엇이든지 뚫어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원하는 것이 안돌아 간다면 왜 안 돌아가는지, 무엇이 원인인지 알아내어서 그에 맞게 대처합니다. 예를 들어 집이 안 팔린다 하면 왜 안 팔리는지 그것을 정확하게 점검을 해가지고 그 안 팔릴 수 있는 요인을 제거를 시키든지 어떻게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다른 데 비해서 값이 비싸다 그러면 안 팔릴 수 있잖아요? 그러면 싸게 내리든지, 너무 지저분하다 하면 깨끗하게 고쳐주든지, 여긴 팔릴 때가 아니다 그럼 다른 쪽으로 마음을 바꾸든지 해야 되는데 막연히 그냥 ‘왜 안 팔리지? 왜 안 팔리지?’ 십년이 되어도 안 팔리죠.

 그래서 이 불법은 정확합니다. 내가 한대로 예요. 그래서 무언가 잘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점검을 해가지고 되게끔 조건을 맞추어 놓는 겁니다. 꽃은 반드시 모든 조건이 맞아야 핍니다. 겨울에 얼어 죽는데 나와서 꽃이 핍니까? 요즘에는 날씨가 왔다 갔다 하니까 좀 따뜻하다고 얼른 나왔다가 ‘에이, 괜히 너무 일찍 나왔네. 얼어 죽겠네. 들어 갈수도 없고…’ 꽃들이 많이 그러더군요. 너무 일찍 나와 가지고 ‘이렇게 추울 줄 알았으면 좀 있다 나올 건데…’ 이미 잎이 나오고 꽃을 피워버렸으니 내년에 다시 나와야지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 조건이 맞으면 나오죠. 그러나 나와서도 또 조건이 안 맞으면 못사는 거예요. 살 수 있고 할 수 있게 그렇게끔 조건이 다 맞아 들어가야죠. 맞아 들어가면 여지없이 터집니다. 조건이 맞아 들어가면 여지없이 뭐가 나오든지 거기에 맞는 게 나오는 거예요. 왜 아직 안 나와야 되는데 나오느냐 하지만 조건이 맞아 버리면 나와 버려요. 요즘에는 꽃도 시도 때도 없이 피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코스모스도 원래 가을에만 피는데 가을에만 피나요? 요즘은 보니까 아무 때나 피더군요.

 -둘 아닌 부처님 법 늘배우기 원입니다.-

 이것도 기분 좋으면 부처님 법 배우고 기분 나쁘면 ‘절에 안 가야지…’ 스님 보기 싫으면 절에 안가고, 안 그래요? 부처님 법 늘 배우려고 한다면, 부처님 법이 기분 좋고, 기분 나쁘고 그런 걸 떠나서 배우는 것 인데, 늘 배우기를 원한다 하면은 일단 ‘나는 부처님 법을 배워야 돼.’ 해야 할 텐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 도반이 싫거나 걸리는 게 있으면 ‘오늘은 가지 말아야지…’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이것도 원하는 게 아니고, 진실로 원하는 게 아니고…. 그렇죠? 맨날 이런 것 원한다면서 원하지 않죠? 좀 안 좋으면.

 -마음에 보리심을 항상 내기 원입니다.-

 이것도 원하지 않는 거죠. 아, 처음에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아니네요. 이것도 과연 항상 이 보리심을 내기를 원했는가?

 -마음속에 극락세계 태어나기 원입니다.-

 이것은 원해요? 이것도 원하지 않죠? 이것도 원하면요 ‘어떻게 극락세계에 태어날까? 어떻게 극락세계에서 살 수 있을까?’ 스스로 그 방법을 찾습니다. ‘극락세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은 극락세계가 되는가?’ 그러면은 이제 극락세계가 될 수 있는 길을, 인터넷으로 들어가든지 마음속으로 들어가든지 어디를 들어가든지 아무튼 찾아냅니다. 극락세계는 뭐고 어떻게 들어가는지 찾아냅니다. 찾아내다가 보면 알아내 버려요.

 그런데 극락세계 들어가는 것 간단하죠. 아, 좋은 생각만 하면은 극락세계 아니에요? 나쁜 생각나거나 삼악도나 그런데 있을 때 빨리 바꿔 버리면 바로 극락이죠. 극락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고 하죠? 사람들이. 뭐 지옥에서 빨리 튀어나오면 극락이죠. 빨리 생각 한 생각만 바꿔버리면 바로 바로지요. 생각밖에는 없어요. 극락이든 지옥이든 이쪽에 있든 저쪽에 있든 생각을 빨리 바꾸면 그대로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는 마음이라서 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바꿔집니다.

 체가 없는 마음이기에 항상 방방 떠있죠. 방방 떠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 줄 알아요? 고정이 안 되어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바꾸었다고 해서 그것도 내가 좋다고 어떤 상태를 즐기려고 하면은 그것도 안돼요. 그게 방방 떠있기 때문에 고정되게 두면은 안 되고 그냥 아무튼 딱 바꿔 버리면 그냥 그대로 항상 극락세계에 있는 거죠. 내가 항상 순간순간에 어떻게 마음을 쓰면 되는지 그걸 알면 항상 극락세계 있는 거죠 본래. 극락세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것도 진실로 원하지 않았죠? 또 이것도 원하지 않았고….

 -마음속에 아미타불 속히 뵙기 원입니다.-

 이것도 원하지 않았을 거고.

 -온 세상에 나투기를 원입니다.-

 이것도 원하지 않았죠? 아무 생각 없었죠. 이것도.

 -모든 중생 제도하길 원입니다.-

 이것은 원했어요? 이것도 원하지 않았죠? 지금 보니 여기 아무것도 여러분들이 원한 것이 없네요? 그런데 원한 것도 없는데 왜 매일 읽었어요? 무슨 말 인지도 모르고 내가 이걸 원하는지 안 원하는지 모르고 하셨죠. 그래요? 안 그래요? 제가 헛얘기 하는 것입니까? 한번 잘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천수경을 많이 했는데 내가 진실로 한번이라도 내가 이걸 읽으면서 진실로 이걸 원했는가? 내입으로 막 하는데 진실로 원하면서 이렇게 하는지, 그냥 형식으로 하고 있는지, 그냥 읽으라고 하니까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냥 읽으니까 읽었죠? 읽으니까 읽었는데 읽는 것이 맞는 건지, 뭐 하려고 힘들게 써놓았는지, 한문을 한글로 싹 바꿔가지고 모르는 말 다 바꿔서 놨는데 뭐 하려고 해놨는지, 여러분한테 도움이 되라고 했는지, 그냥 읽으라고 했는지, 이런 것을 잘 보시고 진실로 하나라도 진실로 하려고 해야만 된다는 것, 진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죠? 아시겠죠?

 진실로 원하지 않았다는 것 알겠죠? 그런데 ‘진실로 원하는 것’ 그것도 어렵죠? 그게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로 원해 지지가 않죠? 지금이라도 내가 진실로 무엇을 어떻게 원해야 하는가? 그걸 알면 될 텐데, 그것을모르기 때문에 진실로 원하는 게 없어요. 그러나 과연 내가 진실로 이걸 원해야 되는 것인지 원하지 않아야 되는 것 인지, 그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면 이제 원하는 쪽으로 갈수가 있어요. 모르니까 원하지 않은 것이거든요. 뭐든지 어디에 좋은 것이 있더라. 어느 산에 산삼이 있더라. 그러면은 산삼 좋은 것 인지 알잖아요? 그럼 캐러 가죠. 여러분, 꿈에 산삼 본 꿈을 꿨는데 실제로 산삼을 캤다는 그런 얘기 들어보셨죠? 어느 산의 어디쯤인데 정확한 위치를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 산의 어딘 것 같다 하면 정확하게 몰라도 그것 캐러 딱 찾으러 가죠. 그 산삼 좋은 것 아니까? 안 그래요?  

(중략)

 

그래서 한번 여러분 스스로 과연 뭐가 진심인가 오늘은 한번 잘 한번 살펴보시고 정말로 내가 원하는 씨앗을 심으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지금까지는 내가 이게 진심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쪽으로 향해서 진심으로 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면 됩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될 것 인가 생각을 해보면 이쪽으로 진심이 다시 돌아 올 수 있어요.

 모든 팔자는 내 마음대로 바꾸는 거니까. 이게 더 좋다 그러면은 ‘내가 좋은 쪽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아 가야 되겠다.’ ‘이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되겠다.’ 하면은 이쪽으로 방향을 틀을 수 있게끔 깊이 생각을 해가지고 딱 놓으면, 그쪽으로 방향을 정확하게 틀어 놓으면 틀어 놓아 집니다. 아직까지는 못 틀었다 하더라도, 아직까진 내가 이것도 잡고 저것도 잡고 저것도 잡고 있다 하더라도 ‘인제는 이쪽으로 틀어야 되겠다.’ 그러면은 그것을 정확하게 틀수 있는 쪽으로 틀어놓고 그까짓 쓸데없는 가지들은 다 베어 버리세요. 그래버리면 그리 정확하게 들어갑니다.

 전에는 그런 가지들을 붙잡고 있는 걸 자기도 모르고 있었죠. 정리를 안했으니까. 인제는 그런 정리를 싹 해보고, 내가 진실로 뭘 해야 될 것인가 해보고 그다음에 그쪽으로 방향을 딱 틀어 놓으세요. 그러면은 그렇게만 하면은 자기 자성불이 정확하게 그쪽으로 끌고 갑니다. 아시겠죠? 자 그럼 오늘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2007. 4. 6 경전법회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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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경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