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혜 불변의 진리로 초월된 삶을 살자

계정혜.
우리가 삼학이라고 그러죠? 계정혜.
계정혜가 우리 전체를 돌리는 원리예요.
그러니까 계정혜 하니까 어쩔 때 처사님 들이나, 계에 대해서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이 계戒를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이 들면 절에 안 오려고 하더라구요.
 술을 계속 더 드시고 싶거나 또 다른 것을 하고 싶은데, 계戒에서 술 먹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뭐 하지 말라, 이렇게 해놓으니까,'난 이것들 해야 되는데, 그러면 난 계戒를 못 지키지잖아, 절에 가기가기전에 실컨 좀 하고 나중에 가야 되겠다', 이러한 생각들을 갖고 계신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계戒라고 하는 것도 정확하게 알아야 그것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증도가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스님이 있는데 한 스님은 음행을 했고, 한 스님은 사람을 죽였고, 두 스님이 살인, 음행 두 계戒를 파했어요. 파했는데 반딧불 우바리 존자는 죄를 씌어 주었고, 유마힐 거사는 죄를 벗겨줬다고 배웠죠?
어떻게 해서 똑같은 사건인데 누구는 죄를 씌어 주고, 누구는 죄를 벗겨주었는가?
그러면 거기에 또 어떤 계戒가 있어서 벗겨 주었는가? 어떤 계戒가 있어서 벗겨 줬어요?
아까 그 계戒는 사람이 만드는 계戒고 나중에 죄를 벗겨준 계戒는 이 초월적인 계戒죠.
이 초자연적인, 초월적인, 진짜 진리의 계戒, 계戒거든요.
그러면 진짜 진리의 계戒를 알면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버린다 말이 예요.
죄가 죄가 없어져 버려요. 그런데 모르면 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 계戒 속에 들어 가서 꼼짝을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을 벗어나는 법이 놓아라, 모든 것을 놓아라, 그것이 바로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게 계戒잖아요. 계戒. 이 법칙 이 불변하는 법칙이예요. 모든 색이 공했다는 거잖아요. 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삼신불이 나오잖아요. 청정법신불, 천백억화신불, 원만보신불.
천백억화신불이 천백억으로 여러 가지 행위를 했단 말이예요.
 
그것이 본래 청정법신불의 나툼이라는 말이예요.
그러면 천백억화신으로 했던 행위가 전부 청정하다는 거잖아요.
그것을 알면 죄가 벗어나는 것이 아니예요? 죄가 없다는 거잖아요. 본래 청정하다는 것이죠. 

 육조단경에서 배웠잖아요. 이 허공중에는 선인, 악인, 선악, 좋은 것, 나쁜 것, 옳고, 그른 것이 전부 함께 들어 있다고, 그런데 우리 마음자리는 허공과 같다, 그러니까 허공에 선악이 다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모르면 선만 택하고 악을 버리면 거기서 죄가 생겨나잖아요.
악이 죄로 전부다 죄로 되어 버리는 거죠. 업이라고 그러는데 그것이 다 허공중에서 악도 공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진리가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다' 이것은 불변하는 진리고, '아까 음행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이것은 불변하는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예요. 사람이 공동체 생활을 할 때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초월해서 돌아가는 이 진리를 써먹고, 그 다음에는 놓아라.
놓아야 만이 또 초월해서 돌아가는 이 무한한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것이지, 안 놓으면 그게 쓰여 지지가 않고 자기가 또 고정된, 고정된 사고로써 돌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내면은 놓는 것이죠.
그러니까 계戒라고 하는 것이 아까 말했듯이
 
색이 공했으니까 어떠한 색깔들도 공했다는 것을 알고 계속 쓰고 놓고, 쓰고 놓고, 쓰고 놓고, 하는 것이 계戒를 지키는 것이라는 거죠. 그것이 계戒를 지키는 거예요.
 
어떠한 행위, 천백억 화신으로 변한 어떠한 행위가 공했다는 것을 알고, 하고 놓는 것이 완전히 계戒를 지키는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놓고 계戒를 지키면 바로 안은 항상 고요하잖아요. 정定이 된다는 거죠.
고요하고 일체 불변하고 초월해서 돌아가는 에너지를 쓰고 있는데 그 자리는 부동으로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고요하고, 그러한 가운데서 그렇게 청정한 일체 이것도 저것도 고정이 안 되있는 청정하고, 아무 색깔이 없는 그러한 가운데서 지혜가 나오는 거죠.
그래서 계정혜잖아요. 거기서 지혜가 무한대로 무한한 생각이 있으니까 무한한 생각을, 무한한 지혜를 거기서 낸다는 것이죠. 항상 그래요.
계산 없이, 계산 없이 내면에는 그렇게 계산 없이 살다가, 계산 없이 생각이 나오고, 계산 없이 놓고,
계산 없이 생각하고, 계산 없이 놓고, 이렇게 해서 쭉 우리가 생활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말이 이해가 되요?
 그래서 그렇게 하면은 항상 여러분이 청정법신불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또 놓고 일체 놓는 것을, 계戒행을 항상 지키는 거예요. 무슨 짓을 했든지 간에 무조건 ‘그 색은 공이다’ 하고 무조건 놓아 버리라는 거죠.
 '아이구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되는데' 하며 걸리지 말고, 무조건 놓아 버리라는 거죠. 무조건.

잘했다, 못했다, 하지 말고 무조건 놓아 버리라는 거죠.
놓아 버리고 놓아 버리는 정 가운데, 일체 아무 청정한 가운데서 또 필요할 때는 필요한대로 계산대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생각에서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생각하고 그리고 또 놓아 버리고, 생각을 하고, 놓아 버리고.
 
 목적 없는 삶이라고 그러잖아요. 목적 없는 삶.
그렇게 해서 그렇게 쭉 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계정혜를 지키는 것이고, 우리가 진리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진리대로 살고 초월되어서 살아가고 그러면 항상 내면은 푸르름 지금 5월 처럼 신록이 푸른 5월처럼 아주 푸르르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푸르르게 영원히 물들지 않고, 내면이 물이 안 들어 있는 거죠.
그냥 쓰고 놓고, 쓰고 놓고, 물이 하나도 안 들어 있는 거죠.
어느 것이 맞다 어느 것이 틀리다, 어느 것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좋다, 나쁘다, 이렇게 아무것도 물이 안 들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물이 안 들어 있으니까 이것이 부동이겠죠. 마음이 움직이지 않겠죠.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서 지혜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죠.
 

2009.05.10. 정기법회 법문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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