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ern chronicle]영화평론가 마노 바푸자리_승려가 만든 새로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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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진실을 향한 여정

승려가 만든 새로운 영화

 

ManojBarpujari

 

여기 영화의 구성 보다는 달변을 선호하는 떠오르는감독이 있다. 지오반니 나니모레티는 장황하리만큼 긴 대화 위주의 블랙코미디영화 4(April, 1998)이라는 영화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그 영화에서 그는 반쯤은 자서전과도 같이 이탈리아의 현대 정치와 영화인으로서의 그 자신의 목표, 그리고 아버지가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영상보다는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것과도 같이 그려내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의 뉴 웨이브계의 선구자 알랭 레네의히로시마 내사랑(Hiroshima, Mon Amou, 1959)은 비록 비선형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졌지만 본질적으로는 36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한 커플의 길고 긴 대화이다. 연극이라지만위의 두 영화와 같이 큰 스크린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야기만 하는 것을 보다 보면 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잠에 빠져드는 것은 강한 물리적 액션과 선동적 장치로 관객들을 흥분시키는 상업영화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좋은 영화의 특징이라고 말할 것 같다.

 

 이런 영화들과 내 흥미를 끌었던 한국의 철학적 영화 산상수훈(2017)을 주제나 포괄적인 관점에서 비교를 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구조적인 지향점을 놓고 보았을 때 이 영화들 간에 공통점은 존재한다. 산상수훈에서여덟 명의 신학대학생들은 신, 천국, 죄악, 그 밖의 어려운 철학적 주제들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한다. 이것이전체 구성의 전부다. 하지만 이런 것은 10년간 91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였고 결국 장편 영화에까지 손을 뻗은 유영의 감독에게는 그리 크게 놀라운 구성이 아니다. 이 불교승려이자 교육자는 2007년부터 종교적 테마의 영화를 사명감을가지고 제작해 왔으며 전세계의 영화제에 참가하며 60개가 넘는 수상 경력과 영예를 얻었다. 감독은 데뷔작 산상수훈을 제외한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을 겸업하였다.

 

 1 12일부터 20일 까지 열린 제 16회 다카 국제 영화제에서 들었던 감독 자신의 믿음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비록 영적인 영화부문으로여러 국제 종교영화제에서 상영되었지만 이 영화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 함으로써 믿음의 차이라는 벽을 뛰어 넘었다.이 영화의 광범위한 호소력에 러시아 정교회의 성 피터스버그 영화제 사무총장인 마리아 알렉세이브스카야는 우리 기독교 영화제의 안목을 넓혀주었다라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유영의 감독은 평화와 조화의 대사로서 전세계에 인류애를 선사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현대는 활자의 시대를 넘어 이미지의 시대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야 말로(구원과 화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입니다.” 라고 말한다. 최근 감독은 유네스코 산하 국제 영화기구인 유니카(UNICA) 한국지부의 회장을 맡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한국 유니카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비록 불교승려가 감독했지만 제목이 말해주듯, 산상수훈은 기독교 영화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산상수훈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훈(설교)은 마테복음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이다. 영화는 이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왜이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산상수훈이야 말로 예수의 가르침 중에 가장 잘 알려졌지만 반대로 가장 덜 이해되고확실히 잘 실천되지 않는 것이어서가 아닐까? 2,000 년전에 그리스도가 설교하였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도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위해 중요하고 필수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화는 차분한 분위기의 주인공 학생 두연이 동료 학생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설명을 함으로써 신도들의 질문에 답을하고 있다. 질문과 답변 속의 설명은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의 패턴을 따르지 않는다. 신학생들 사이의 성경 논쟁은 영화 대사의 핵심이다. 그들은 아담과이브가 선악과 나무에서 사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논의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신과, 그 아들 그리고 성령의 삼위일체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된 금컵과도 같이 인간과 신의 관계는 분리되지 않고 유지된다. 도연이 말하길, 만약 반지와 금컵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금은 아버지인신이다 (본질). 반지는 아들인 예수이다 (형상, 신은 자신의 형상을 본 따 인간을 만들었음). 그리고 금의 창조의 힘은 성령이다 (신의 능력) 다른 말로 하면 신은 금덩이이고, 인간은 그 금덩이로 만든 형상이며신의 전지전능한 힘은 금덩이에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의 근본 요소라는것과는 별개로 산상수훈의 메시지는 톨스토이나 간디와 같은 도덕적 사상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메시지는 기독교적인 평화주의의 토대의 역할을 하며 불교의 14대달라이라마의 설교와도 유사점을 보인다.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 설교하는 모습은 그리 새로운 것이 없는것처럼 그려진다. 여러 다른 영화들도 여러 설교장면을 강조하였었다. 가장긴 설교의 담론에서 예수는 구약과, 특히 전설적인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유명한 TV시리즈 십계(The Decalogue ,1989)의 기초가 된 십계명을 완성하고 재해석한다. 이 영화는 도덕적 혹은 윤리적 딜레마를 마주한 인물들과 함께 사회의 어려움을 묘사하는 현대 폴란드를 배경으로한 10개의 한 시간짜리 영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키에슬로프스키의작품은 보통의 감독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예술 작품의 걸작이다. 만약 영화에 극적인 요소가 배제되게되면 전체적 관점에서 흥미가 떨어질 위험을 내재하게 된다. 예술가가 교회나 수도원의 선생님이나 강사와도같은 태도를 취한다면 그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을 감동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예수에 관한 이탈리아의전기적 드라마였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마테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1964)은 그런점에서 놀라운 예이다. 영화는 특이하게도 산속의 동굴에서 전체 장면을 찍어내고 있다.

영화의 자연 동굴을 강조한점은 마테복음을 참고해야 한다. 몇몇 마테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말을 산상수훈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예수가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쉽게 집중하도록 산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덟 명의 학생들이 논쟁을하기 위해 괜찮은 장소를 찾아간 유일한 이유가 되었어야했을까? 글쎄, 이 문제는 예술가 본인의 자유에 맡기겠다. 반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공은 대화로 설교를 풀어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대학원의 교실에서라면 교수는 학생들에게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같은 특정 복음의 의미를 토론하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진부한 토론이시작될 것이다. 영화 속 청년들의 천국의 개념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사막은 봄/꽃이 피어나고…/주님이이땅을 통치 하실 때/ 사막은 낙원이 되리라…”가사에서 힌트를얻어서 그들은 천국에서는 어린아이가 독사의 둥지에 손을 넣어도 물리지 않을 것임을 머릿속에 그린다. 그들은이 비유를 인간 독사가 동료 인간을 무는 것을 잊어버리는것을 천국의 필연적 기적이라고 해석한다.

 

첫 장면에서 청년들은동굴에서 겨울의 추위와 어둠을 이기기 위해 불을 피운다. 이후 이 화톳불은 고구마를 구워먹는 용도로도사용된다. 논쟁의 불길에 놓인 생각이라는 음식으로 나타낸 상징적 행위이다. 한 청년은 오늘날 많은 범죄가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만든 스티브 잡스가 책임을 질 일은 아니라고말한다. 같은 논리로, 신이 선악과 나무를 만들었지만 신은그 정죄 위에 있다. 이런 논의는 신학적 관점에서 이치에 맞아 떨어지며 이런 점에서 작가이자 감독에게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다카 영화제 기자 회견에서 감독은 자신의 영화는 세상의 희망과 또한 염원에관한 것이며,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의 존엄성의 회복이라는 올바른 일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말한 바 있다. 감독에게 영광을! 당신은 과감히 한 발을내디뎠습니다. 무수한 언어 속을 탐구하며 생각을 영화로 만드는 일만 남았군요. 행운을 빕니다 유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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