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세계단편영화제 수상 관련 중앙일간지 보도

중앙일보 2007.9.13일자 사회면
‘영화 문외한’ 대해 스님 … 세계단편영화제서 잇따라 수상 [중앙일보]
“눈에 보이지 않는 불법의 진리 누구나 알 수 있게 영화로 만들어”
10일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 앞에서 대해 스님이 자신이 총감독한 단편영화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아무도 안 믿데요. 중이 무슨 영화를 만드냐고.”

 머리 깎은 스님이 영화를 만들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제목의 5분30초짜리 단편영화다. 이 영화로 그는 3일 서울세계단편영화제에서 ‘1등(최고상)’을 차지했고, 9일 슬로바키아의 리투토프스키 니클라우스에서 막을 내린 제69회 UNICA 세계단편영화제에서도 수상(입선)의 영광을 안았다.

 주인공은 경북 경산 대해사 국제선원의 선원장인 대해(慧如·48) 스님. 슬로바키아에서 상패를 들고 막 귀국한 그를 10일 서울 인사동의 찻집에서 만났다.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스님은 그야말로 ‘영화의 문외한’이었다.

스님은 지난해 9월 우연히 UNICA 세계단편영화제의 막스 한슬러 총재를 만났다. “영화 얘기를 나누다가 제가 그랬죠. 영화 만드는 기술은 총재가 더 잘 알겠지만, 제가 총재에게 영화를 가르칠 수 있다고 말이죠.” 이 말을 들은 막스 총재는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약속했죠. 내년에 진리를 영화에 담아서 보여주겠다고 말입니다.” 스님은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영화는 결국 그릇이니까요. 핵심은 거기에 ‘본질’을 담는 거죠.”

 그런데 시간이 별로 없었다. 연말까지 서울세계단편영화제에 작품을 내놓아야 했다. 게다가 대해 스님은 기술적인 면에선 영화의 ‘영’자로 모르는 처지였다. “신도들에게 ‘영화를 만들자’고 했죠. 그런데 아무도 안 믿데요.” 대해사의 박희천 신도회장은 “정말 황당했죠. 신도들이 저한테 막 항의를 하더라고요. 무슨 수로 영화를 만드나고 말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스님을 믿어보자는 말로 설득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영화의 내용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정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본질이 현상으로 나타난 거죠. 영화의 본질도 마찬가지에요. 불교의 본질도 불(佛), 법(法), 승(僧)이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이런 이치를 알리고 싶었어요. 영화는 이를 위한 방편이죠.”

 결국 대해사의 젊은 신도들을 중심으로 ‘참영화 연구소’를 꾸렸다. 말이 ‘연구소’지, 주먹구구식으로 영화 제작을 시작한 것이다. 영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내용은 단촐하다. 강아지도 나오고, 어린 아이도 나오고, 병원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도 나오고, 우주의 모습도 나온다. 이런 장면들은 어김없이 계란처럼 생긴 원형으로 돌아간다. 삼라만상이 하나(본래)에서 나왔고, 그 하나(본래)가 또 삼라만상으로 나타남을 설파한 것이다. 총 33개국에서 200편의 작품이 출품된 올해 서울세계단편영화제에서 영화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최고상’을 받았다. 한옥희 심사위원장은 “철학적이면서 차원이 높은 영화로 감히 심사위원들이 평을 할 수 없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어서 이 영화는 UNICA 세계단편영화제에 출품됐다. 총 29개국에서 124편의 작품이 올라왔다. 이 가운데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4위에 해당하는 입선을 차지했다.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란 사람은 막스 한슬리 총재였다. “유럽에서도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더군요. 그들도 ‘모두가 하나에서 벌어지고, 하나로 돌아간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하더군요.” 막스 총재는 아예 내년 봄께 한국으로 와서 불교를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스님은 전했다.

 굳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물었다. “불법의 진리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알아야 하는 생명의 원리죠.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든 겁니다.” 스님은 벌써 두 번째 영화도 기획하고 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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