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는 속의 명백한 자유

2008년 남편이 신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중일 때였다. 옆 침대 환자가 참복어와 느릅나무를 달여 먹고 장청소를 하면 속병이 싹 나아요.”했다. 나는 병원 정기검진에서 피에 염증이 있으니 약을 먹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도 그냥 내려놓고 약을 먹지 않고 있던 터라 그 말을 듣고 그대로 해보기로 했다.


시키는 대로 참복어와 느릅나무를 구해서 달여 놓고 남편과 함께 그 물을 수시로 마셨다. 그런데 3일쯤 먹고 나니 남편은 별 탈이 없었으나 나는 대변을 볼 때마다 선홍색 피가 보였다. 아주 붉고 맑은 피였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피가 계속 나왔지만 무시하고 계속 달여 먹었다. 몇 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괜찮겠지 하고 놓아버리니 언제 그쳤는지 모르게 괜찮아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괜찮겠지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일주일이 지나도 열흘이 지나도 계속 피가 나왔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달여 먹는 것을 중지하면 멈추겠지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중지했는데도 계속 피가 나오는 걸 보면 그걸 복용해서 그런 것은 아닌 듯 했다.

 

아무래도 남편처럼 나도 암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고 싶어도 의사선생님 입에서 암입니다!” 하는 사형선고를 듣게 될까봐 두려워서 감히 그럴 수도 없었다.


이러다가 죽으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정말 죽기는 싫었다. 전에는 이번처럼 이렇게 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죽으면 죽고 살면 살겠지하고 무관심 했는데 이번엔 그렇게 초연해지지 않았다. 변을 볼 때 마다 자꾸 확인을 하게 되고 그 때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식구들한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말을 하면 병원 가자고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에는 수 만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아무래도 암이 아닐까? 이러다가 죽지는 않을까? 아니야 죽지는 않겠지. 암이라면 검붉을 텐데 선홍색이니 괜찮겠지. 이제 괜찮아질 거야…….하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고 변을 볼 때마다 계속 나왔다. 마음속으로 죽고 사는 것을 내려놓는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놓아지지도 않았고, 자신을 믿는다 하면서도 백퍼센트 믿어지지도 않았다.

 

남편이 신장암이라는 선고를 받고 왔을 때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도 대해스님의 가르침대로 내 자성자리를 굳게 믿고 맡기면서 마음을 다스려나가니 크게 동요되지 않고 담담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었는데, 막상 그 일이 나의 현실이 되었을 때는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너무나 겁이 나고 죽기가 싫었다. 그러는 사이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내 병은 암이 틀림없다는 거의 확고한 믿음이 형성되어갔다.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설움 받고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 고생 끝나고 좀 살만한데, 이제 마음공부 제대로 하려고 하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마음이 밀려왔다. 괘씸하고 서럽고 분한 마음이 태산 같은 파도가 되어 끊임없이 밀려왔다.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놓아보려고 작정을 하고 이틀 동안을 발버둥쳐 보았지만 놓았다 붙들었다 반복할 뿐 진짜 놓아지지는 않았다. 속이 답답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길은 보이지 않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생사를 다 버려야 하는 마음공부를 한다면서도 죽음 앞에서 이토록 두려워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집착이 도무지 놓아지지 않았다.

대해스님을 뵈었다. 그간의 일을 말씀 드렸더니 남이 먹는다고 왜 따라 먹느냐고 야단을 치셨다.

 

몸에 좋다고 해서 먹었습니다.” 해도 대해스님께서는 남에게 좋다고 해서 보살님에게 꼭 좋은 건 아니잖아요.” 하셨다.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려놓으라고만 하셨다. 그러나 쉽사리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죽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그간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니 너무나 억울했다. 모진 세월을 얼마나 힘들게 고생하고 설움 받고 살았는데 이렇게 죽을 순 없었다. 큰 맘 먹고 암 검사라도 한 번 해볼까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별의별 생각을 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공부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이것이 공부 재료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직 죽기 싫은 마음뿐이었다. 잠도 못자고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몇몇 지인들한테 얘기해도 모두들 아무 말이 없었다. 가까운 도반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지금 내 상태에 대해서 얘기 나누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그러나 그 도반은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농담을 했다.

형님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잖아.”

집착을 놓아야 한다는 뜻으로 도반 간에 흔히 할 수 있는 농담이었지만 그 말이 몹시 서운하고 야속했다.

아니. 죽기 싫어. 이제 공부 하려고 하는데 더 살아야 돼.”

형님은 할 일 다 했으니 지금 죽어도 되잖아.”

싫어. 난 더 살아야 돼.”

속으로 내가 자식 결혼시키고 죽으려고 지금까지 살았나.” 싶은 생각에 그런 농담을 하는 도반이 미웠다. “그토록 고생했고 힘들게 살았고 억울하게 살았는데 내가 왜 죽어. 난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난 억울해…….” 수많은 생각 속에 끊임없이 라는 놈이 붙어 돌아갔다. 아무리 놓아도 놓아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작은 체험은 수없이 했고, 모든 것을 놓는다고 해왔지만 막상 내가 죽는다는 큰 일 앞에서는 마음이 방방 뛰고 도무지 놓아지지를 않았다.

 

시종일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불현듯 대해스님께서 말씀하신 법문 한 구절이 뇌리를 스쳤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서 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몸은 단지 심부름만 할 뿐이에요.”

그래. 내가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 자리만 믿고 매달리자. 만약에 죽으면 다시 태어나서 대해스님께 와서 공부하지 뭐.”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놓기 시작했다. “근본자리에서 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무조건 믿고 들어가자.” 내가 나를 달래며 그렇게 놓아나가자 그토록 멍하고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이 되어갔다. 마음속에서 불안한 마음이 올라올 때 마다 그 자리에서 해결하라고 하면서 놓아버렸다


그렇게 계속 해나가자 어느 순간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토록 시끄럽던 속이 편안해지고 더 이상 죽음에 대한 공포도 불안감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십일 가까이 보이던 피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그쳐버렸다


대해 스님께서 항상 죽고 사는 것을 다 놓아라. 다 놓아도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법은 결코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이 일을 겪으면서 진실로 자기 근본자리를 믿고 몽땅 맡겨 버리면 결코 자기가 자기를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물론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

 

대해스님의 가르침이 너무나 감사했다. 만약에 그 일로 병원에 갔다면 큰 병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검사 저 검사에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방이 막히고 방법이 없으니 절실하게 그 자리만 믿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이런 체험을 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일이 있은 후 어머니 생신 때 친정에 갔다. 동생 댁이 하는 말이

형님. 젊어지셨어요.”했다.

이 사람아, 밥 한 그릇 더 먹고 나이 먹으면 늙어지지 어떻게 젊어 지겠노.”

정말이에요.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 봐요.”

그제야 거울을 쳐다보니 얼굴이 달라져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대해스님을 만나 마음공부하면서 주변 사람들로 부터 예뻐졌다. 피부 좋아졌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그냥 하는 말이려니 하고 지나쳤었는데, 달라진 내 모습을 뒤늦게 확인하고 보니 법회 때 대해스님께서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어서 마음이 밝아지면 몸도 밝아지고 건강해진다고 하신 말씀이 진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체험담을 이야기 하려 한다. 앞에서 얘기한 출혈 문제가 해결되고 난 이후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문득 한 생각이 들기를 내 근본자리에 믿고 맡기니까 그토록 멈추지 않던 출혈도 멈췄는데, 그렇다면 허리 아픈 것도 그렇게 믿고 맡기면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내 허리뼈는 오랜 세월동안 정상이 아니었다. 요추 4, 5번이 어긋나 있어서 항상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한 쪽 다리를 제대로 쓸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병원에서는 어긋난 뼈마디에 나사를 박아서 고정시키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으나 수술을 거부하고 지금까지 버티어 온 상태였다. 허리뼈가 그렇게 된 데에는 나로서는 말하기 힘든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그 얘기를 하자면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한다.

 

당시 나는 그리 행복하진 않았지만 남 보기엔 그럴 듯 해 보이는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남편은 모든 돈을 자기가 관리했고 생활비는 가장 최소한도로, 그러니까 먹고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만 주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 돈으로 살아보려고 먹는 것 입는 것을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이고 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줄이고 또 줄였지만 그럼에도 항상 돈은 쪼들렸고 월말이면 생활비 때문에 남편과 늘 싸워야 했다


특히 가을이면 더 심했다. 가을에는 쌀, , 감자 잡곡 등 한 해 양식을 사 놓아야 하니 생활비가 더 많이 들었고, 따라서 가을만 되면 돈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 연중행사가 되었다. 남편에게 이제는 예전만큼 어렵지는 않으니 옷도 좀 해 입고 문화생활도 좀 하자고 하면 무슨 여자가 돈 쓸 궁리만 하느냐고 역정만 내기 일쑤였다. 그런 남편과 살다보니 나는 늘 불만이 많았다. 그렇지만 남편은 늘 지금은 고생스럽더라도 알뜰하게 모아서 늙어선 오손 도손 정답게 남부럽지 않게 살자하고 속삭여 주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위안삼아 힘겨운 삶을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알뜰살뜰히 살던 어느 날 하늘이 노래지는 일이 생겼다. 남편에게 젊은 여자가 생긴 것이었다. 나에게 실로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이었다. 그렇게 할 거 못하고 입을 거 못 입고 알뜰히 모은 돈이 나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평생 벌기만 했지 자기를 위해 써본 적이 없다면서 한 두 달 안에 끝낼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11년이 지난 최근 결국 남편에게 신장암이라는 병이 나면서 끝이 났다. 그 모진 세월을 나는 이 불법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버텼을지 모른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기니 나는 속된 말로 개밥의 도토리신세였다.

 

남편은 바람피우는 것을 가족들에게 표시나지 않기 위해서 출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그래서 아들 며느리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명절 때나 제사 때 온 가족이 다 모일 때면 남편은 자식들 앞에서 오히려 나를 실성한 사람 취급을 하였다. 같이 싸울 수도 없어서 그 자리를 피해버리면 남편은 신이 나서 자식들에게 내 험담을 해대었다. 그 바람에 나는 자식과 며느리들에게 이상한 엄마, 이상한 시어머니가 되어 버렸다. 손자가 태어나도 며느리들은 나한테 아이를 맡기는 법이 없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실성한 할머니 때문에 잘못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참으로 모질고 혹독한 시련의 세월이었다.

 

당시 선원에 다니고 있던 때였으므로 나는 매일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매일 선원에 나가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놓으라는 스님들 법문을 매일 같이 들으면서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좀처럼 놓아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마음공부로 쉽게 들어갈 수가 없었고 다만 스님들께서 내 마음을 알아주고 들어주시니 그게 위안이 되어서 매일 나갔다


선원에 나가면 하루 종일 단주를 만들었고, 힘든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말없이 가서 도왔다. 공양간 일이나 이런 저런 일들을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했다. 몸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살겠지 하고서 육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무엇엔가 몰두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리에 무엇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 부터 극심한 통증으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구십 노인처럼 허리가 90도로 꺾인 채 몸을 간신히 끌고 다녔다. 한의원에 가서 침 맞고 며칠 쉬었으나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자궁이 밑으로 내려앉아서 자궁을 들어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술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또 다시 견딜 수 없는 회한이 밀려왔다. 그토록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이런 고통까지 받아야 하나 하는 비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받은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로, 그리고 몸을 돌보지 않고 혹사시킴으로 인해 내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자궁이 내려앉은 영향으로 요실금이 생겨 위생패드는 늘 차고 다녀야 했고, 허리는 너무 아프고 꼬부라져 제대로 걷기가 어려웠다. 5분 걷고 5분 쉬는 식으로 간신히 몸을 끌고 다녔다. 잘 때는 허리의 통증 때문에 바로 누울 수도 없었다. 또 화병으로 인해 상체는 뜨겁고 하체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길가다 어디서 싸우는 소리만 들려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그럴 때면 온 몸에 기운이 일시에 빠져버리고 극심한 두통이 왔다. 화병으로 인해 온몸의 열기가 위로 떠버린 상태여서 평상시에도 기온의 변화에 몸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밖에 나갈 때는 항상 여벌의 옷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거기다가 퇴행성관절염에 신경통까지 있었으니 온 몸이 병주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려앉은 자궁은 수술해서 들어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으니 수술을 받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나 남편에게 얘기 하니 펄쩍 뛰었다. 돈이 없어서 수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돈 달라고 졸라도 허사였다. 무조건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젊은 여자에게 흠뻑 빠져 있던 남편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없었다. 내가 아프다고 하는 것도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으로 그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침 먹다가 싸웠다. 왜 돈이 없느냐고, 내가 평생 번 돈 내놔라, 파출부 값, 세탁비 내 놓으라고 조르면서 싸웠다. 남편은 내 고통에는 아랑곳 없이 무조건 돈이 없다고만 했다. 이런 남편을 믿고 살아온 내 삶이 너무나 허무하고 비참해서 억장이 무너졌다. 옆에 듣고 있던 아들이 엄마, 내가 돈 줄께. 약 잡수세요.” 했다. 아들한테 35만원을 받았다. 일단 한약을 먹어야지 하면서도 선원에 일이 바쁠 때라 약 지으러 갈 시간이 없었다. 그 당시 대법당 준공법회를 앞두고 있어서 선원에 일이 많을 때였다. 그래서 아파도 꾸부린 몸으로 매일 선원에 출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하 강당에서 당시 우리 신행회 지도법사스님이셨던 대해스님께서 버섯을 손질하고 계셨다. 이때다 하고 대해스님 옆에 살짝 다가앉아 말씀드렸다. “대해스님, 자궁이 내려앉아서 수술하러 가려고 합니다.” 대해스님께서는 자초지종을 다 들으시고 저를 쳐다보시면서 나 같으면 수술 안 해요!” 하셨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그래도 수술하러 갈 거예요.” 했다


그러나 아직 준공법회 전이라서 당장 수술을 받으러 갈 형편이 안 되었다. 여전히 불편한 몸으로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했다. 아픈 몸을 질질 끌고 다니다시피 하면서 억지로 일을 했지만 생활하기가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프고 요실금은 심하고 기가 막혔다.


신행회 법회 날이 왔다. 수술하러 간다고 대해스님께 말씀은 드리고 가야 할 거 같아서 다시 말씀 드렸다. “대해스님, 준공법회 끝나고 수술 받으러 갈 거예요.” 했다. 대해스님께서는 다시 저번과 똑같이 말씀하셨다. “나 같으면 수술 안 해요!” 난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준공법회 끝나고 수술 받으러 가리라 다짐을 했다. 그러나 주위의 도반들은 보살 성격에 초파일 마치고 가야지 준공법회 마치고 못 갈걸?” 했다. 당시 준공법회가 51일로 예정되어있었고, 그 일주일 후에 초파일이 있었다. 그러나 난 초파일 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무조건 준공법회 끝나면 곧 바로 수술 하러 갈 거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반들의 예상대로 준공법회 끝나고 수술 받으러 가지 못했다. 계속 바쁜 나날을 보내니 몸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몰랐다.

 

초파일이 지나고 이틀을 집에서 쉬고 드디어 병원에 갔다. 그런데 있어야 할 나의 차트가 없어져버렸고 담당의사도 바뀌어 있었다. 왜 왔느냐고 물어서 수술 받으러 왔다고 했다. 진료기록이 없으니 할 수 없이 다시 검사를 받았다. 담당의사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언제 진료를 받았느냐고 해서 작년에 받았다고 하니 그제야 작년 차트를 다시 찾아내었다. 진료기록을 비교해본 담당의사는 의아해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 동안 어디서 무슨 치료를 받으셨어요?”
침 몇 번 맞고 그냥 절에 열심히 다닌 것 밖에는 없는데요?”
다시 담당의사는 머리를 갸우뚱 하면서 아주 정상입니다. 아무 이상이 없는데 왜 수술을 받으려고 하세요? 수술 받으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 보다 상태가 더 좋아요.” 했다. 순간 대해스님께서 나 같으면 수술 안 해요!” 하셨던 말씀이 스쳐지나가면서 눈물이 났다. “,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게 수술을 해주셨구나. 대해스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다. 이 불쌍한 중생을 이토록 자비롭게 보살펴 주셨구나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많이 끄달리고 힘들었지만 대해스님의 가피로 자궁 문제는 그렇게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허리 아픈 것은 여전했다. 몸 관리를 하지 않으니 갈수록 더 심해졌다. 허리 통증뿐만 아니라 양쪽 다리에 마비증상이 와서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잘 때는 허리 통증 때문에 바로 누울 수가 없어서 항상 옆으로 누워서 자거나 발 베개를 해야 했다. 내 근본자리를 믿고 모든 것을 놓으라는 대해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놓았다가 다시 들었다가 반복 할 뿐 제대로 놓지를 못했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흘렀고 대해스님께서 외국에 계시다가 뜻있는 분들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2006년도에 다시 한국에 오셨고 그해 부처님 오신 날에 선원이 개원되었다. 나는 대해스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 너무나 기뻐서 예전에 대구 선원에서처럼 매일 같이 출근했다. 예전처럼 단순히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대해스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다양한 법회를 통하여 본격적으로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부지런히 다녔다. 특히 대해스님께서 풀어주시는 금강경, 육조단경 같은 경전들을 배우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듯 했다.


일체 ''라는 상을 떠나야 한다는 핵심적인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다보니 그토록 분노와 원망을 가득 차 있던 내 마음이 어느새 호수처럼 고요해지고 편안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도 이제는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불법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내 삶에 이런 날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었겠는가. 생각할수록 감사할 따름이다.

 

마음이 편해지니 몸도 많이 편해졌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이어왔던 화병 증세도 거의 사라졌고, 퇴행성관절염이나 신경통도 없어져버렸다. 다만 허리의 통증은 여전했다. 남편이 돈 줄 테니 보광병원에 가서 치료하라고 했다. 뒤늦게 안 거지만 전에는 내가 건강하면 자기 곁을 떠날까봐 계획적으로 돈을 안주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남편이 시키는 대로 병원에 가서 사진 찍고 정밀검사를 하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4, 5번 척추가 어긋나 있으니 나사못을 박아서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하면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단호히 수술을 거부했다.
어차피 죽을 몸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사는데 까지 살지…….”
하는 생각이었다. 가족들은 당장 수술하라고 난리였다.

 

그렇게 버티다가 어느 날 문득 그래, 내 자성을 믿고 맡기니 하혈도 멈췄는데 이것도 맡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한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부터 나는 통증이 느껴질 때 마다 내 자성자리에서 알아서 척추를 정돈하라고 마음을 내면서 놓아 나갔다. 그렇게 생각 날 때 마다 계속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엎드려서 책을 보다가 너무 불편해서 돌아누우려고 다리를 드는데 허리에서 두두둑하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 어긋나 있던 것이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 하면서 일어났다가 반듯이 누워보았다. 편안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허리가 아파서 바로 눕지를 못했는데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었다. 믿겨지지 않아서 물고기 마냥 상하체를 흔들어보아도 편안했다. 너무나 신기했다. 뼈가 제자리를 찾아들어간 것이었다.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아무 이상이 없다. 잘 때도 걸을 때도 편안해졌다

.

내 자성자리를 믿고 맡기니 어긋나 있던 뼈도 제자리를 찾아들어간다는 것을 체험하고부터는 마음이 더욱 편안해졌다. 이제는 무엇이든 다 놓아버려도 되겠구나 하는 든든한 믿음이 생겼다. 이제는 어떤 것도 다 내려놓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이 몸은 근본자리의 심부름 밖에는 할 것이 없다는 대해스님 말씀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그토록 모진 세월을 힘들게 살아온 내 삶이 대해스님을 만나서 불법 공부한 덕분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천상의 삶으로 바뀌었다. 그 많은 나날 동안 나의 하소연과 투정을 자비로써 다 받아 주시고 이 도리를 알 수 있도록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대해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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